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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소설 |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1,〈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Memory Man)〉리뷰

by 생각의조각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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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리디북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Memory Man)〉 리뷰

데이비드 발다치, 황소연 옮김│북로드│추리/미스터리/스릴러, 영미소설

 

이야기의 시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1편. 저 제목 때문에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걸 감안하면, 조금 촌스럽긴 해도독자의 흥미를 끌기 좋은 직관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에이머스 데커과거 유망한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이지만 경기 중 일어난 사고로 인해 뇌가 변화하여,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는 '과잉기억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 남자. 그 재능을 발휘하여 유능한 형사로서 활약한 때도 있었지만 처남, 부인, 딸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면서 인생이 곤두박질치게 된다. 살해범을 찾지 못한 채 실의에 빠져 죽지 못해 살던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건, 갑자기 나타나 그의 가족을 살해했음을 자백한 한 남자 때문이다.

 

한편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지역사회가 큰 충격에 빠진 가운데, 전혀 무관해 보이던 에이머스 데커 가족 살인사건과 맨스필드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단서가 나온다. 이에 에이머스 데커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본인의 능력을 활용하여 진정한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다.

 

범죄 스릴러 영화와 같은 전개

정말 재미있게 읽은 첫 번째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한 편의 범죄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스토리 전개였다.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임에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 중간에서 멈추기 힘들었다.

 

일단 주인공의 독특한 능력과 기본 줄거리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적절한 추리의 단서를 제공하여 주인공과 함께 범인을 추격하는 재미도 각별하다. 즉 잘난 주인공 혼자 논리적 비약을 통해 짠-하고 범인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작가가 제공한 실마리를 통해 독자 또한 범인의 정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 에이머스 데커 가족의 진정한 살인범은 누구인가?
- 맨스필드 고교 총기난사 사건의 트릭은? 
- 범인이 에이머스 데커를 타깃으로 삼은 이유, 즉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이 세 가지가 제일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였는데, 앞선 두 가지의 의문점은 주인공의 과거와 초반 배경 설명을 통해 충분한 복선을 제공한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추리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기본 뼈대 정도는 추측 가능하다.

 

다만 내가 정말 공감하기 힘들고 분노한 포인트는 세 번째 수수께끼에 있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범인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연민을 가지고 분노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범행 동기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0살도 되지 않은 데커의 딸, 몰리를 살해했다는 점이 제일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다.

 

범인과 같은 과거를 지닌 이라면, 적어도 그와 비슷하게 사회적 약자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어린아이 몰리를 살해한다는 행위에 고통을 느끼고 망설이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를 범인의 에이머스 데커에 대한 굴절된 증오와 분노가 컸던 탓으로 서술했지만, 난 여전히 그 부분이 제일 찜찜하고 납득되지 않는다. 하기야 자신의 고통을 전혀 무관한 타인을 살해하는 시점에서, 그 살인자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것인지도 모른다.

 

스토리가 흥미진진했던 것과 별개로 에이머스 데커라는 캐릭터 자체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그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는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독특한 능력 정도고, 그 외의 요소는 내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는 후천적으로 생긴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능력 탓에 거의 소시오패스가 되어버렸는데, 그 고통스러운 가족사 때문에 데커에게 연민은 느꼈을지언정 소시오패스적인 면모에는 정말로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소시오패스라도 재수 없으면서도 매력적인 셜록 홈스와 달리, 에이머스 데커는 정말 큰 상처를 지닌 현실적인 소시오패스인지라 더 화나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모든 것을 잃어 황폐화된 사람이 인간적으로 매력적이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의 파트너였던 랭커스터나, 초반에 데커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던 재수 없는 기자 알렉스 재미슨이 후반으로 갈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찌질하고 무능해 보이던 FBI 요원 로스 보거트도 의외로 괜찮은 인간형이라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만 빼고 조연들이 더 매력적이라니, 이거 어쩌냐.

 

마지막 파트에 보거트에게 스카우트되는 장면을 통해 에이머스 데커 다음 시리즈를 예고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총평

이미 앞서 말했듯, 마치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심리 묘사, 장면 묘사와 전환, 인물 묘사 등이 굉장히 세세해서 영화를 보듯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다만 인상 깊은 구절이나 대사, 가슴 깊이 와닿는 먹먹함은 없다. 한마디로 재미는 있지만 내게서 많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종류의 소설은 아니다.

 

사실 이건 단점이면서도 동시에 큰 장점이기도 하다. 감정 소모가 크지 않아 마음 편하고 신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킬링타임용 오락 소설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실제로 나는 이 첫 번째 시리즈를 읽고 바로 다음 시리즈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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