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이야기

소설 |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 1〈흑백〉리뷰 (스포 有)

by 생각의조각 2022. 9. 12.
728x90

이미지 출처 : 리디북스

〈흑백〉 북 리뷰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일본소설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 1, 흑백

〈흑백〉은 미시마야 괴담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로, 에도의 유명한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의 조카딸 오치카가 흑백의 방에서 가게를 찾아온 손님에게 괴담을 듣는다, 는 기본 플롯이 각 에피소드마다 반복된다.

 

물론 〈흑백〉은 첫 번째 시리즈인 만큼, 미시마야 괴담 자리가 탄생하게 된 계기인 주인공 오치카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중심으로 손님의 괴담과 맞물려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된다. 

 

적응이 필요한 에도 시대극

우리나라 사극도 아니고 일본 시대극인지라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낯선 용어들의 향연인지라 단어 하나에도 브레이크를 걸고 '이게 무슨 뜻이지?'하고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읽다 보면 서서히 용어에 익숙해져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빨라지기는 하지만, 다소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수작

그러나 이처럼 가독성이 낮고, 다소 낯선 배경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의 매력, 즉 흡입력이 상당해서 중간에 눈을 뗄 수 없다.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치정극의 중심에 서게 된 미녀, 오치카의 개인사에 대한 호기심이 앞서기도 했고.

 

처음에는 오치카의 약혼자를 소꿉친구가 살해했다, 는 단순한 치정극인 줄 알았으나, 미야베 미유키 답게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렇게 단순하게 그리지 않는다. 오치카 인생의 수난은, 치정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다. 살해된 피해자와 살인한 가해자라는 단순한 구도가, 사실을 알게 되면 될수록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조차 애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관계의 다면적인 측면을 아플 정도로 현실적이고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부분이 굉장히 미야베 미유키답다. 결국 모든 진상이 드러났을 때 선악의 구분도, 권선징악도 애매해진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분명히 가려 처벌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다소 찝찝하고 쌉싸름한 뒷맛이 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힐링 괴담

결국 〈흑백〉의 괴담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귀신이나 망령과 같은 저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 그들을 불러들이는 인간의 마음이다. 모든 비극의 씨앗은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저 세상의 것을 끌어들인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의 글을 읽다 보면 굳이 알고 싶지 않던 진실을 깨닫게 된 기분이 들고, 인간 혐오 내지는 인간 불신의 감정에 시달릴 것만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이야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징벌이 아니라 치유에 있다. '힐링 괴담'이랄까, 오치카는 다양한 괴담을 듣고 겪으며,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조금씩 극복해 나간다.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의 괴담 자리는 한마디로 고해성사의 자리이기도 하고 심리 치료 상담소이기도 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짐을 내려놓는다.

 

사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이는 주인공 오치카가 아니라, 숙부 이헤에와 숙모 오타미를 비롯한 미시마야 식구들이었다. 인생의 선배로서 본받을만한, 안정적이면서 따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오치카를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위해주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다. 괴담을 듣고 인간 혐오를 느낀 팍팍한 마음을 따뜻한 물로 적셔주는 것만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