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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소설 | 타우누스 시리즈 9,《잔혹한 어머니의 날》리뷰 (스포 有)

by 생각의조각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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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어머니의 날리뷰

넬레 노이하우스 저, 김진아 역│북로드│추리/미스터리/스릴러, 독일 소설

드디어 가장 최근에 출판된 타우누스 시리즈 9편까지 도장깨기 완료. 사실 다 읽은 지는 몇 주 되었는데 리뷰 쓰기가 어찌나 귀찮던지. 선선해진 날씨가 좋아서일까, 책이 잘 읽히지 않고 밖으로 나가고만 싶다. 

 

#. 추리물로써의 면모가 돋보이는 타우누스 시리즈 9편

 

살인범의 탄생을 알리는 이야기의 도입부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주된 이야기는 과거 살인의 흔적을 추적해 나가는 경찰의 시점으로 전개하되, 중간중간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의 시점을 끼워 넣음으로써 독자에게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이야기의 중반은 지나서야 살인사건의 전체 윤곽을 제대로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는 이야기의 초반부터 살인범과 살인 동기에 대한 단서가 상당히 명확하다. 때문에 독자는 범행 동기를 갖고 있는 한정된 용의자 중에서 과연 누가 진범일지 추리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이건 타우누스 시리즈 7편 <산 자와 죽은 자>와 비슷한 측면.

 

그러나 역시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은 복잡한 인간관계의 핑퐁을 보는 재미, 자극적인 스토리 전개와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재미로 보는 것이지, 설정이나 플롯의 치밀함에 감탄하거나 추리하는 맛으로 보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전형적인 유형의 살인자라서 그 정체를 추리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거니와, 이번 시리즈에는 유독 설정상 구멍이 많아 보여서 실망스러운 측면이 있다. 

 

#. 유독 구멍이 많은 이번 시리즈

 

타우누스 시리즈에서 감정을 잃고 바보 같은 실수를 하는 건 주로 올리버 반장이었는데 이번 이야기에서는 피아의 가족이 연관되어 있어서일까, 피아가 허술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를테면 납치된 것이 확실한 사람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신뢰할 수 있을까? 납치범이 피해자의 핸드폰을 빼앗아 조작된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가능성부터 생각하는 게 당연한 수순인데, 일반인인 나도 알 수 있는 상황을 피아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내가 아는 피아는 이렇게까지 멍청하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거야?!

 

피아의 실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시리즈가 유독 실망스러운 건 용의자 수가 굉장히 한정적이고, 살인범이 어머니의 날에 살인을 저지른다는 단서가 분명하며, 유능한 프로파일러가 확실한 범인상을 제시했음에도 경찰이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등 체계적인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우누스 시리즈 중 제일 정통 추리소설다운 전개임에도 과정이 너무 허술해서 그 매력을 제대로 살리질 못했다는 느낌이다. 

 

킴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급변한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킴 또한 잉카와 마찬가지로 표면적인 인적사항 외에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기는 했다. 피아의 여동생이지만 오랫동안 피아와의 사이가 소원했다는 것, 7편에서 피아의 수사에 도움을 주며 다시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중이었다는 것, 피아의 상사인 니콜라와 사귄 지 벌써 5년 차라는 것, 나름 유능한 범죄 심리학자라는 점 정도가 킴에 대해 알려진 전부. 또 단순하고 따뜻한 성격의 언니와 달리 다소 차갑고 냉철하며 속을 잘 내보이지 않는 어른스러운 스타일이라는 것 정도만 추측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했던 킴이 이번 시리즈에서 정말 의외의 큰 비밀을 숨기고 있었는 데다 니콜라와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그 드라마틱한 변화가 도저히 설득력 있게 와닿지를 않는다. 지난 시리즈를 통해 킴의 비밀에 대한 떡밥, 즉 복선을 충분히 쌓아왔더라면 모를까 그런 것이 아니기에 급조한 설정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킴과 니콜라의 관계 또한 '레즈비언 흉내'를 낸 것이다, 라는 식으로 서술해 실망이 컸다. 킴이나 니콜라 모두 과거에 스트레이트 여성이었던 만큼, 둘이 사귀게 된 것 자체는 '레즈비언 흉내'였다고 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5년이나 지속된 현시점에서는 더 이상 '흉내'라고 할 수 없으며, 그냥 둘이 양성애자였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굳이 왜 저렇게 꼬인 설정을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작가가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전개를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 기타 인물들

 

킴과 니콜라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자잘한 신상의 변화 또한 빠지지 않고 깨알같이 나왔다.

 

미리엄과 헤닝은 결국 이혼했다. 솔직히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피아가 16년의 결혼생활 동안 고치지 못한 헤닝의 일중독을 미리엄이 고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안타까운 건, 헤닝 이 놈 때문에 미리엄과 피아의 우정 또한 작살났다는 것이다. 아마도 미리엄이 '피아 네가 고치지 못한 헤닝의 일중독을 나는 치유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해 피아가 상처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역시 사랑 앞에 쿨한 유럽 따위 없다, 여기나 거기나 사랑이 얽히면 찌질하고 치사하게 변하는 건 매한가지인 듯.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헤닝이 자신은 결혼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점이다. 이 놈 때문에 인생 낭비한 여자는 피아와 미리엄으로 충분하다.

 

2편 <너무 친한 친구들>의 잘생긴 연하남이자 주인공이었던 루카스 또한 안토니아와 결혼해서 두 자식까지 낳았다. 안토니아가 크리스토프의 딸이고, 피아가 크리스토프와 결혼했으니 - 법적으로는 루카스가 피아의 사위가 된 셈. 루카스가 피아에게 열심히 들이댔던 2편을 떠올리자면 상황 참 우습다. 물론 이런 게 타우누스 시리즈를 읽어나가는 소소한 재미지만.

 

첫 시리즈에서 거의 12년이나 지난 만큼, 세월의 변화가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좀 서글픈 기분까지 든다.

 

올리버는 일중독에서 치유되어 개인의 삶과 직업의 균형, 즉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맞추는 삶을 살고 있다. 피아 또한 목장 딸린 집을 처분하고 살기 편한 크리스토프의 집으로 이사했고, 키우던 동물들도 거의 다 늙어서 죽고 고양이 한 마리만 남은 상황.

 

시리즈 초반의 반짝반짝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새로운 목장에서의 삶에 설레던 피아가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황혼기로 접어든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데, 글과 함께 나 또한 나이 들어가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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