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이야기

소설 | 타우누스 시리즈 8,〈여우가 잠든 숲〉1-2권 리뷰 (스포 有)

by 생각의조각 2022. 10. 3.
728x90

〈여우가 잠든 숲〉 1-2권

넬레 노이하우스 저, 박종대 역│북로드│추리/미스터리/스릴러, 독일 소설

#. 올리버 반장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이번 이야기는 넬레 노이하우스의 말마따나, '올리버 반장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의 결정판이다. 물론 앞선 시리즈에서도 올리버의 개인사는 살인사건과 별개의 재미난 이야깃거리이긴 했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42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올리버의 과거와 살인사건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비슷한 이야기 구조

 

역대 최다 등장인물 등장, 2권으로 나눠 전개해야 할 만큼 방대한 분량의 스토리이지만 기본 플롯은 초창기 타우누스 시리즈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하 '백설공주')을 연상시킨다. 좁고 폐쇄적이며 이방인에게 적대적인 마을, 제 식구 감싸주기 때문에 은폐된 진실, 다수에 의해 행해진 비극 등 겹치는 설정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백설공주'보다 재미있게 보았다. 문체도 인물에 대한 묘사도 과거의 타우누스 시리즈보다 깊이감 있고 진화한 버전이라고 느꼈기 때문. 

 

42년 전 실종된 소년과 현재 일어나는 연쇄 살인의 연관성, 여러 사람이 뒤얽혀 각자의 이득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가운데 복잡하게 꼬여가는 사건의 양상이 재미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올리버와 그의 오랜 친구들이 직접적/감정적으로 깊이 얽혀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특히 잉카는 1편부터 출연한 초기 멤버이면서도 많은 것이 비밀에 싸여있던 신비로운 캐릭터였던만큼, 이번 시리즈에서의 어마어마한 이미지 추락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작가가 처음부터 그녀를 이런 캐릭터로 설계했던 것일까, 아니면 인기 없는 캐릭터라 단번에 쳐내기 위해 이번 시리즈에 급조한 설정인 걸까 새삼 궁금해진다. 

 

#. 10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올리버와 피아

 

타우누스 시리즈 1편으로부터 10년이 지나, 세월의 흐름이 물씬 느껴지며 올리버의 심경의 변화가 크게 느껴진 이야기이기도 했다. 1편에서만 해도 40대로서 나름 싱그럽고(?) 열의 넘치던 올리버는 그동안 늦둥이가 생기고, 코지마와는 이혼했으며 다른 두 자식들은 완전히 독립하는 등 개인 신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삶의 경험치가 쌓임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도 달라지듯, 54세의 올리버는 더 이상 형사로서의 정체성에 얽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형사로서의 직업에 흥미나 자긍심을 느끼기보다 회의와 불안감을 느끼며 1년의 안식년을 신청하는 모습을 보자니, 작가가 슬슬 올리버 은퇴 떡밥을 던지는 것인가, 혹시 타우누스 시리즈도 결말을 맺으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리버뿐만 아니라 피아까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사용에 서투른 모습, 노안으로 인해 독서 안경이 필요하다는 묘사를 읽노라면 서글퍼서, 작가가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현실 반영을 했어야 하나 원망스러운 마음이 조금 들기까지 한다. 물론 피아는 형사직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있는 올리버와 달리 아직도 직업에 대한 애정이 있고, 반장직에 대한 욕심도 있어 은퇴할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올리버 대신 임시 반장직을 수행하고 새로운 후임을 의연하게 이끌어주는 등 강력계 형사로서의 연륜이 느껴지는 동시에 첫 번째 시리즈에서의 풋풋하고 활기 넘치던 모습은 사라져서 아쉽기도 하다. 

 

#.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올리버

 

앞선 타우누스 시리즈를 리뷰할 때마다 끊임없이 적었듯, 나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올리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올리버가 조만간 은퇴할지도 모른다는 암시에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미운 정이라도 들긴 들었나 보다.

 

무엇보다 코지마의 배신을 시작으로 인생의 여러 위기를 겪으며 이 아저씨의 경직된 사고관이 조금 유연해진 것이 느껴져서 미움이 희석된 것도 있고. 이번 시리즈는 여러모로 올리버의 수난시대라 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결국 오래된 과거의 트라우마를 털어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하다.

 

이제는 방황을 그만두고 카롤리네에게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아저씨 삽질은 이제 그만해요 하는 바람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