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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소설 | 링컨 라임 시리즈 2,《코핀 댄서(The Coffin Dancer)》리뷰 (스포 有)

by 생각의조각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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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 댄서(The Coffin Dancer)》

제프리 디버 저, 유소영 역│랜덤하우스코리아│추리/미스터리/스릴러, 영미소설

제프리 디버의 주특기, 반전

1편 <본 컬렉터> 못지않게 재미있었던 링컨 라임 시리즈 2편 <코핀 댄서>.

이쯤 되니 제프리 디버의 스타일에 대해 확실히 알 것 같다. 이야기를 다양한 갈래로 진행시키고 수많은 단서를 통해 독자를 교란시키다가, 마지막에 반전을 터뜨리며 그 다양한 퍼즐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쾌감을 준다.

이 아저씨가 워낙 반전을 즐겨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복선을 주워 담아 내 나름대로 철저히 방비하고 있었는데도 왜 매번 함정에 빠지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지만, 당하고도 유쾌하다.ㅋㅋ 완성된 그림을 보자면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복선을 확실하게 심어놓는 완벽주의 작가가 바로 제프리 디버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이 작가의 패턴을 알아버린 이상 과연 다음 시리즈에서도 반전이 주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까.

 

사상 최강의 암살자 코핀 댄서

2편의 주 스토리는 의뢰인의 의뢰대로 3명의 증인을 없애려는 청부살인자 '코핀 댄서'와 증인들을 지켜내려는 링컨 라임 팀의 승부라 할 수 있다.

청부살인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의 팔에 관 앞에서 여자와 함께 죽음의 춤을 추는 사신 모양 문신이 있다는 사실뿐. 비행기 폭파로 증인 1이 살해당하는 강렬한 도입부와 함께 링컨 팀에게 45시간 동안의 증인 경호 임무가 할당된다.

1편에서는 소설 속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싶었는데, 2편에서는 왜 이리 느리던지. 전자는 한시라도 빨리 피해자를 구출해야 했다면 후자는 공격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방어전이어서 그런 듯싶다. 

징글징글하면서도 동시에 감탄이 나오던 철저한 직업 정신의 소유자, 코핀 댄서. 잔인한 살인자인데도 묘한 매력이 있어서 밉지 않고 유쾌했던 캐릭터였다. 확실히 정리되지 않고 마지막 떡밥을 남겨 놓은 것으로 보아 이후 시리즈에서 또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2편의 진 주인공, 퍼시 클레이

링컨 라임 시리즈의 주인공은 링컨과 아멜리아지만, 이번 2편의 진 주인공은 퍼시 클레이가 아닐까. 그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 작은 키, 보잘것없는 외모, 그러나 비행에 있어서만큼은 천재적인 실력의 보유자. 냉철하고 무뚝뚝한 애교 없는 성격, 자신이 원하는 바는 꼭 이루고야 마는 근성과 고집, 투철한 직업 정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남자 링컨 라임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닮은꼴인 두 사람이다. 그러니 아멜리아가 질투할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겠지.

개인적으로는 전형적인 여성상을 탈피하는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분명 다양한 종류의 여자들이 이 세상에는 가득한데, 소설 속 여캐들의 모습은 어쩜 그리 한결같은지. 특히 남자 작가의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의 경우, 다양한 계열의 남성 캐릭터들에 비해 여성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좁은 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물론 나는 전형적인 미인에 똑똑하고 몸을 잘 쓰는 아멜리아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 링컨보다도 - 보다 현실적이면서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여캐가 나와줬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링컨 팀에도 아멜리아 외에는 죄다 남자들 뿐이잖은가.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퍼시 클레이라는 캐릭터는 정말이지 신선했던 것이다. 

사실 이야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퍼시는 내게 어마어마한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킬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회사를 지켜내려는 직업정신은 대단하다만, 그 고집 때문에 경호하는 경찰이 죽어나가는 통에 영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퍼시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거의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단 하나 남은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그 심정을 작가는 세심한 심리묘사를 통해 충분히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게끔 그려낸다. 그래서 독자인 나 또한 퍼시의 집념에 질리는 동시에 '대단한 여자야'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달까. 

 

링컨과 아멜리아의 관계 변화

2편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링컨과 아멜리아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1편 <본 컬렉터>에서의 첫 만남 이후로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둘은 가끔씩 침대를 공유하지만, 성적인 쾌감이 아니라 좋아하는 곰인형을 끌어안았을 때 느끼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사이에 가깝다. 스승과 제자이자 직장 파트너, 우정 이상 사랑 미만, 경계가 애매모호한 관계의 지속. 

그런 둘의 사이에 변화의 계기가 된 게 퍼시 클레이의 등장이었다. 링컨과 퍼시 사이의 소울 메이트적인 공감 - 그야말로 투철한 직업 정신 - 이 아멜리아의 질투를 자극하여, 링컨과 아멜리아는 확실한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커플의 탄생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링컨 라임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냥 지금까지처럼 건설적인 파트너나 사제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정신적 연대, 플라토닉 한 사랑까지가 딱 좋았던 것이다. 사지마비 환자인 연인과는 일상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없을 텐데, 우리 아멜리아에게 왜 이리 힘든 연애를 시키는 거냐며 작가에게 항의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시리즈인 만큼, 앞으로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찬찬히 지켜봐야겠지만. 

 

투철한 직업정신의 향연

이번 시리즈는 그야말로 투철한 직업 정신의 향연이었다.

코핀 댄서, 퍼시 클레이, 링컨 라임, 아멜리아 색스, 마지막으로 작가인 제프리 디버까지. 개인적으로 이렇게 치밀한 플롯의 소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쓰는 걸까, 제프리 디버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컸는데 마지막 역자 해설에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 소설 한 편에 대한 자료 조사와 구상에만 8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하고, 인쇄되기 전 20번 이상이나 고쳐 쓴다고 하니, 그의 글이 이토록 치밀하고 조직적인 것이 납득이 간다.

아직 읽어야 할 링컨 라임 시리즈가 10편이나 된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다 읽은 후에는 제프리 디버의 또 다른 '캐스린 댄스' 시리즈가 있음을 생각하면 겨울 식량을 잔뜩 저장해놓은 다람쥐마냥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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