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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소설 | 타우누스 시리즈 4,〈백설공주에게 죽음을〉리뷰

by 생각의조각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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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북 리뷰

넬레 노이하우스 저, 김진아 역│북로드│추리/미스터리/스릴러, 독일 소설

타우누스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이미 몇 년 전에 읽은 바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내게 지나치게 낯선 독일 배경의 스토리와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인 올리버와 피아 형사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시리즈물의 경우 시간 순서대로 읽으며 주인공들에게 정을 붙이는 게 중요한데, 다짜고짜 네 번째 이야기부터 읽으니 올리버와 피아 개인사가 나올 때는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어 더 재미없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미 읽었지만 당최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재독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시리즈 순서대로 차근차근.

 

시기와 질투, 치정이 뒤얽힌 전형적인 넬레 노이하우스 표 스토리

시기와 질투, 치정이 나오지 않으면 넬레 노이하우스의 글이 아니다. 좋게 말하자면 현실적이며 인간 본성에 충실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지나치게 원 패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1, 2, 3편에 이은 일관된 스타일이다. 

 

인간의 부정적인 본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동시에 감정 소모가 심해 피곤함도 느끼게 된다. 거의 인간 혐오증을 조장하는 수준이다.

 

다음은 넬레 노이하우스 소설을 읽으며 명심해야 할 공식들이다. 거의 이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다.

 

1. 친구를 믿지 말라. 항상 배신자가 있다.
2. 사람의 호의를 믿지 말라. 그 이면엔 음흉한 의도가 숨어있다.  
3. 남자는 죄다 바람둥이다.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는 크리스토프밖에 없다.ㅋㅋ
4. 모든 범행은 시기와 질투, 치정에 얽혀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인에 대해 극단적으로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한 남자의 불행 포르노 서사 끝장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물론 타우누스 시리즈 대부분이 감정 소모가 제법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 시리즈의 경우 스토리 안팎으로 폭탄이 터지는 통에 유독 피로했다.

 

우선 살인사건의 중심에 있는 토비아스와 그 가족이 1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집단 린치에 가까울 정도의 봉변을 당하는 모습이 보기 괴로웠다. 작고 폐쇄적인 마을과 그 안에서의 좁고 제한적인 인간관계,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희생, 시기와 질투의 추악함, 그야말로 인류애를 잃을 정도의 극단적인 집단 이기주의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솔직히 잘 짜인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충격과 반전을 주기 위한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꼈다. 하나같이 비양심적인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 막판에 정말 어이없이 죽어나간 토비아스의 아버지 등 토비아스의 연속되는 불운은 연민을 넘어 불행 포르노를 보는듯한 불쾌감까지 준다. 그리고 마치 그 고통에 대해 보상하듯 돈과 여자를 안겨주는 것 역시 뻔한 전개라, 토비아스와 아멜리의 서로에 대한 감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하는데도 불구하고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올리버의 사정과 코지마를 위한 변명

이번 시리즈의 가장 큰 이슈는 올리버 반장네 집안 사정이 아닐까 한다. 그의 가정이 파탄 났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생에 횡액이 닥쳤다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 올리버. 사실 올리버의 억울함을 주장하기에는 이 아저씨의 업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만, 주인공이 우울하니 그를 보는 독자 또한 우울할 수밖에. 그나마 또 다른 주인공 피아가 평온하고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코지마가 유책배우자이고 바람을 들켰음에도 뻔뻔한 반응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난 코지마가 왜 외도를 했는지 이해된다. 지난 3편 동안 올리버가 보여준 모습이 그다지 바람직한 남편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올리버의 진상질을 보라. 코지마도 엄연히 직장이 있고 - 연봉도 높고, 심지어 현재 사는 집과 땅도 코지마의 돈으로 얻은 것이다 - 육아까지 병행하느라 바쁜데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 취급하는 것까지. 그런 의미에서 올리버 누나의 팩폭은 솔직히 속이 다 시원했다. 올리버처럼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은 옆에서 돌직구를 날려줘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다.

 

피아의 속마음처럼 사실 코지마의 바람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올리버는 코지마처럼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활발한 여자가, 집안에 갇혀 독박 육아를 하고 남편을 내조하면서 조용히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걸까? 툭하면 직장일 때문에 부인과의 약속을 어기는 남편에게 24년 간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린 적 없다던 코지마가 올리버에게 화를 내는 시점에서,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났음을 올리버는 알아챘어야 했다.

 

올리버는 코지마가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지언정 속으로 그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리라는 것, 남편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몰랐을까? 내심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한 것에 가깝다. 알고 싶지 않았겠지, 그게 자신에게 편하니까.

 

한편으로 코지마 또한 자신의 직업을 참아주는 남편을 존중하기에, 남편이 수시로 형사 일 때문에 약속을 어겨도 이해해줬으리라. 적어도 소피아를 낳기 전까지는. 그녀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스트레스도 지금처럼 극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늦둥이 소피아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미 위에서 말했듯, 올리버는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이다.

 

자신이 그동안 굉장히 훌륭한 남편이었으며 코지마의 바람으로 인한 전적인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억울해한다. 그는 지극히 가부장적이다. 부인의 일에 대해서도 존중받아야 할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참아주고 있다, 배려해주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녀의 직업으로 인한 불편을 참는 만큼, 역으로 코지마 또한 그의 직업에 대해 인내를 발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코지마의 배신을 비난하지만 자신 또한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울 뻔한 순간이 있었음은 생각지 않는다. 결국 지속적인 바람을 피지는 않았다고 말하겠지. 그러나 수사 때문에 만나는 모든 예쁜 여자들에게 군침을 흘린 것을 독자인 내가 훤히 안다.ㅋㅋ 심지어 유타 칼텐제와는 성관계까지 맺지 않았던가. 그녀의 음모에 빠진 거라고 변명하기엔, 글쎄, 그녀의 유혹을 그 또한 즐기면서 바람을 피우고 싶어 했지 않았던가. 올리버는 바람을 피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피우지 '못한' 것이다. 잉카 한젠은 그의 유혹을 거절했고, 유타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은 그에게 진심이 아니었으므로.

 

이런 이유로 코지마의 바람에 분노하고 상처받은 그의 모습을 보자니 불쌍한 마음 반, 한심한 마음 반이다. 자신부터 그 많은 여자들과 바람피울 생각을 수없이 했으면서, 코지마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는 것부터가, 내로남불식 '독선'이다.

 

그리고 올리버에 대해 가졌던 약간의 연민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씻은 듯 사라졌다. 니콜라 엥겔과 맞바람을 피우고, 그다음은 또 다른 여자와 썸 타는 꼴을 보자니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잘 살 것 같아 보여서다. 아, 정말이지 넬레 노이하우스 작가는 결함 있는 인간의 본성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짜증 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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