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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소설 | 히가시노 게이고《교통경찰의 밤》리뷰 (스포 有)

by 생각의조각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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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리디북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일본 소설 | 미스터리/스릴러

 

《교통경찰의 밤》소개

 

《교통경찰의 밤》은 1992년에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입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동안 문예지에 실었던 단편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인공과 등장인물이 각각 다른 독립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모두 교통사고와 관련된 사연으로, 그 사고를 조사하는 교통경찰들이 주 화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6개 단편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천사의 귀
  • 중앙분리대
  • 위험한 초보운전
  • 건너가세요
  • 버리지 말아 줘
  • 거울 속에서

 

각 에피소드의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지 미리 추측해 보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히가시노 게이고

 

개인적으로는 하드보일드한 강력사건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통사고를 다루고 있어서 독자로서 과몰입하게 되더군요. 왜냐하면 우리가 직접 겪을 일이 드문 살인 사건과 달리, 여기에 나오는 교통사고는 모두가 이미 경험해 보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사건들이거든요.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익숙한, 일상사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교통사고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국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SBS 프로그램 - 맨인블랙"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물론 배경이 80-90년대이기 때문에 블랙박스나 CCTV가 활약하는 대신, 목격자 진술과 교통사고 흔적을 바탕으로 한 경찰의 추리가 중심이 되긴 하지만요.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라면 저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입해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독자 누구나 스스로를 악인이나 범법자라고 생각하진 않을 테니 주로 피해자 입장에 몰입하겠지만, 저는 사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정신이 확 깨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한순간의 경솔함, 실수가 크나큰 인명사고로 이어지곤 합니다.

 

모든 에피소드가 재미있지만, 저는 '위험한 초보운전'과 '버리지 말아 줘'가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위험한 초보운전'은 피해자 입장에 몰입해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결말이었고, '버리지 말아 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로 발전시켜도 되겠다 싶은, 정통 추리극 같은 구성이라 흥미진진했습니다.

 

다만 '중앙분리대'와 '건너가세요'는 굉장히 씁쓸하고 가슴 아픈 뒷맛을 남겼어요. 

 

다소 실망스러운 마지막 에피소드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좋았지만, 마지막 이야기 '거울 속에서'를 읽고는 실망스러우면서 화도 나더군요.

 

《교통경찰의 밤》의 이야기 대부분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권선징악이라는 명쾌함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나름 납득할만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에서'의 결말은 제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어요.

 

우리는 현실 속에서 가해자의 장래를 고려하여 정상 참작하는 케이스를 많이 보고 분개합니다. 왜냐하면 가해자의 창창한 미래는 걱정해주면서, 가해자 때문에 파괴되어 버린 피해자의 장래는 무시해 버리는 셈이니까요. 정말 고통받아 억울한 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데, 어째서 가해자의 사정을 그렇게 열심히 이해해 주어야 하는 걸까요.

 

에피소드 '거울 속에서'는 이와 완전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사한 전개를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 나빠요. 가해자의 장래를 고려하여 죄를 묻지 않으니까요. 무슨 대리운전도 아니고, 죗값을 대신 받는 이가 있다 한들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 기만에 치가 떨리면 모를까. 심지어 죽어버린 피해자는 아예 자신의 인생 자체를 박탈당했는데 말이죠.

 

물론 소설 속 등장인물의 가치관이 꼭 작가의 입장과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야기에서 저런 전개가 나왔다고 해서, 저걸 작가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나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그를 이해하는 듯한 동정 어린 시선과 어조가 글 속에서 느껴져서, 그게 굉장히 거슬리고 불쾌했습니다.

 

사실 이건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 《숙명》을 읽으면서 느낀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해자는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돈으로 보상한다는 점, 그의 명예와 지위는 공고하다는 점이 비슷해요. 잘못된 현실을 소설 속에 사실적으로 구현하려는 의도였다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씁쓸하고 기분 나빠지는 결말입니다. 앞선 5개의 이야기를 나름 즐겁게 읽다가 마지막 이야기 결말에 뒤통수를 맞은 심정이었어요.

 

총평

 

개인적으로 게임 못지않게 중독성 강하고 재미난 글을 쓰는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라 아직도 읽을 수 있는 그의 소설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다는 게 기뻐요. 

 

다소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교통경찰의 밤》은 대체적으로 현실적이면서 가독성 좋게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글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흔한 교통사고 사건들을 엮어 이렇게 재미난 추리소설로 탄생시킨 그 발상이 신선해요. 게다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일단 시작하면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눈을 뗄 수 없거든요. 소설의 가장 큰 덕목이자 의무인 "재미"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오락성 뛰어난 글인만큼 킬링타임용 책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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