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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소설 | 그 작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인가? 기욤 뮈소《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리뷰 (스포 有)

by 생각의조각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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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리디북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이미 한국에서도 크게 사랑받고 있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2019년 출간작입니다.

 

그의 이름은 익히 들은 바가 있으나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은 없습니다. 나름 미스터리 스릴러 분야 팬인데도, '프랑스 소설은 너무 심오하지 않아?' 라는 편견으로 피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친구에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물어보니 기욤 뮈소의 이름을 대더군요. 저와 제법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라서, 그 친구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기욤 뮈소의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읽기로 선택한 건,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이라니, 그딴 게 어딨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ㅋㅋ 작가들의 삶이란 컴퓨터 앞에 우직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거기에 신비하고 독특한 창작의 비밀 같은 건 없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제목에 반발하는 심정으로 이 작품을 골랐습니다.  

 

저명한 작가, 작가 지망생, 그리고 끈질긴 여기자

 

이 작품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미스터리는 "저명한 작가 네이선 파울스는 왜 20년 동안 절필하고 잠적하였는가?" 입니다. 큰 문제없이 탄탄대로를 달리던,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사로잡은 작가가 난데없이 절필을 선언하고 외딴섬에 틀어박혀 세상과 벽을 쌓습니다. 그것도 무려 20년이란 오랜 세월을 말이죠. 그리고 그 이유를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작가 네이선이야말로 이 작품 속 비밀의 키를 쥐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철통 같은 보안을 두른 자신만의 성채에 들어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한편 두 번째 인물 라파엘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첫 작품을 완성한 작가 지망생입니다. 동경하고 존경하는 작가 네이선과 같은 소설가가 되길 꿈꾸지만, 그의 첫 작품 《산마루의 수줍음》을 출간해 주겠다는 출판사는 없고, 무수한 거절 편지만 받았습니다. 결국 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의 롤 모델인 네이선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가 잠적해 있는 아름다운 보몽 섬으로 찾아가게 됩니다. 

 

세 번째 인물 마틸드 몽네는 네이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아름다운 여기자입니다. 작가 네이선과의 티키타카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기에, 의뭉스러운 그녀의 속내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네이선의 잠적 이유를 밝혀내려는 가십거리 캐기 좋아하는 기자일 뿐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요?

 

소설은 이 세 인물이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갑니다. 나름 균형을 이루고 있던 세 인물 사이의 삼각 구도가 깨지게 된 건, 늘 평화로웠던 보몽 섬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충격적인 살인 사건 때문입니다. 

 

20년 전 일어난 베르뇌유 일가족 살인사건, 그리고 네이선 파울스

 

작가 네이선, 작가 지망생 라파엘, 기자 마틸드, 세 사람을 주축으로 돌아가던 이야기는 나무에 못 박혀 기괴하게 살해당한 여인의 사체가 발견되며 한층 더 확장됩니다. 이 살해당한 여인이 20년 전 일어난 충격적인 베르뇌유 일가족 살인사건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 관련성이 밝혀지게 되는 과정, 즉 카메라의 기나긴 여정 또한 극적인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베르뇌유 일가족 살인사건이 일어난 때와 작가 네이선 파울스의 은퇴는 비슷한 시기라는 점까지 겹쳐, 독자의 입장에서는 네이선이 숨기고 있는 비밀에 대해 점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네이선은 일가족 살인사건의 흉악한 범인일까요, 아니면 무언가 다른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요?

 

마침내 밝혀진 전말, 그리고 반전 또 반전

 

사실 저도 나름 많은 추리/스릴러/미스터리 소설을 읽어 온 독자로서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어느 정도는 클리셰를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니까요. 덕분에 일정 부분 사건의 전말을 맞춘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뒤통수를 맞고 말았네요.

 

그 반전을 포스팅하면 소설을 즐기는 재미가 크게 반감되니 차마 적을 수 없지만, 적어도 억지스럽거나 납득이 가지 않는 전개는 아니었으며, 신선한 재미를 주는 반전이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힌트가 될만한 사족을 붙이자면, 라파엘의 믿음은 배신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늘 상상 이상으로 악독하고 끔찍한 인간은 있게 마련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라파엘은 누구인가?

 

나름 산뜻하고 명료한 결말의 이야기를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에필로그 파트를 읽고 다시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작가'는 이름이 나오지 않으니 그가 라파엘 본인인지, 아니면 제3의 또 다른 작가인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욤 뮈소는 이 부분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의 판단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끔 두리뭉실하게 처리해 놓았거든요.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이 과연 작가의 상상 속 산물인지, 아니면 실제 현실인지 애매모호하게 말이죠.

 

첫 번째,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며, 이는 현실이 아니라 에필로그의 작가가 작가적 상상력으로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네이선과 마틸드가 실존인물이기는 하지만 나머지 사건들은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죠.

 

두 번째,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제3의 작가는 그 남은 흔적을 작가 네이선의 저택에서 발견한 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저는 나름대로 첫 번째 가능성에 따라,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에필로그 속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소설 속의 소설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극 중 인물 라파엘은 에필로그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에필로그 속 '작가'와 라파엘의 첫 작품 제목이 《산마루의 수줍음》으로 동일하다는 점 또한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절묘하니까요.

 

총평

 

처음 읽은 기욤 뮈소의 작품에 대한 짤막한 감상은, 예열 시간은 길지만 절정으로 치달으면 순식간에 마지막으로 다다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네이선 파울스의 기묘한 잠적과 라파엘, 마틸드가 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는 다소 지루하다고 느꼈어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갈 것이지, 뭐 이러쿵저러쿵 작가들의 창작의 고통과 방법론,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이 많나 싶었거든요. 이건 제가 작가들의 삶에 별다른 환상도 궁금증도 없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소설의 초중반까지는 '아니 이거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맞아? 도대체 언제 살인이 일어나는 거야?'라고 툴툴거리며 읽고 있었어요. 그러나 섬에서 살해당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이것이 20년 전 일어난 베르뇌유 일가족 살인사건과 연관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어마어마한 흡입력을 발휘합니다.

 

15년을 표류한 카메라, 최근 살해당한 두 사람, 20년 전의 일가족 살인사건, 그리고 작가 네이선 파울스의 잠적의 연관성을 추리하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해야만 했거든요. 그 과정이 상당히 재미났고 나름 마음에 드는 반전과 결말이었습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했어요. 아무래도 고리타분한 전형을 벗어나는 - 사실 전 추리/미스터리/스릴러의 고리타분한 전개도 재미있기만 하면 좋아하지만요 - 이야기라 신선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덕분에 기욤 뮈소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좋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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