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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소설 |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는 판타지,《돌이킬 수 있는》리뷰 (스포 有)

by 생각의조각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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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리디북스

돌이킬 수 있는 리뷰

문목하 지음│아작│SF/판타지, 국내소설

 

최근 읽은 소설 중 가장 흡입력 있었던 작품.

 

설정이 마음에 들어서 시작한 소설인데, 읽기 시작하니 멈추지 못하고 직진을 계속하여 마지막까지 단번에 질주했다. 뒤의 내용과 결말이 궁금해서 도저히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장르는 SF인데, 개인적으로는 영화 엑스맨과 무간도, 혹은 신세계가 섞인 느낌이다. 신기한 초능력자들과 그들 사이의 전쟁, 첩보, 배신, 반전이 워낙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서 그런 듯하다. 또 다른 몇몇 영화들도 떠오르지만, 이를 말하면 너무 큰 스포가 되어 소설의 재미가 반감하므로 차마 언급할 수가 없다.

 

촘촘하고 흥미로운 설정

설정이 굉장히 촘촘하다. 솔직히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 이 부분은 너무 허술한 것이 아닌가, 독자로서 지적하면서 읽었던 부분이 사실은 작가가 배치해놓은 정교한 복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전율이란.

 

글을 읽으면서 뭔가 석연치 않다던지, 이 행동과 대사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의혹이 일어나는 부분은 한 번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는 게 좋다. 작가가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그런 떡밥들을 제대로 회수해 주는 편이다. 나의 경우 충분히 예측해서 쾌재를 울린 부분도 있지만, 뒤통수가 얼얼한 부분이 더 많았다.

 

초능력자들의 능력 설정도 식상하지 않아 좋았다. 앞서 영화 엑스맨이 떠오른다고 하였으나, 이 소설 속 초능력자들의 능력은 물이나 불, 혹은 전기, 광선을 쏜다던지, 염력이라던지 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능력에 따라 파쇄자, 정지자, 복원자 세 종류로 분류되는데 말 그대로 물건을 부수거나 멈추거나 되돌리는 능력이라 보면 된다. 다만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이 능력을 쓸 수 없다. 상대방을 살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응용력이 필요한데, 난 솔직히 이 부분에서조차 창의력이 뛰어나야 훌륭한 초능력자가 되겠구나 감탄하기도 했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가슴 먹먹한 스토리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윤서리와 정여준의 사랑이야기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나누는 일도, 진한 스킨십을 하는 일도 없건만 더할 나위 없이 애절하고 처절한 사랑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면서 동시에 인간애라고도, 전우애라고도 할 수 있고, 사실 그 부분이 너무나 나의 취향을 저격해서 열광하며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무심하거나 어른스럽고 능숙한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 캐릭터의 연령이 어릴 경우, 어린아이가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능숙하게 행동한다는 건 어색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성장하거나, 인격이랄지, 인성이랄지 그런 부분이 마모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사람이란 대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능숙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 사람이 천재라 할지라도.

 

그런데 소설 속에서 어린 나이인데도 능숙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의뭉스럽게 구는 캐릭터를 보자면 피식 헛웃음이 나오게 된다. 대개 작가들은 그 캐릭터가 '천재'라는 설정으로 그 어색함을 커버하려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영 몰입할 수 없고 애정도 느끼질 못한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윤서리-정여준은 딱 그렇게 무심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소설 내용이 흥미롭고 설정이 마음에 들어도 이 캐릭터들은 그다지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씽크홀로 붕괴된 도시 전체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당한 재난,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경험치, 라는 측면에서 윤서리와 정여준의 무심함과 어른스러움이 납득된다.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양파 껍질 벗겨지듯 드러나는 윤서리와 정여준의 내면세계가 너무나 처절하고 아릿했다. 그들은 사실 무심한 게 아니었고, 어른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게 뻔한, 자신이 당한 고통을 속으로 억누르고 있어 그렇게 보였을 뿐. 

 

모든 진상이 드러났을 때, 난 정말 윤서리와 정여준이 행복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이 아이들이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잘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결국 행복을 쟁취해 낸다. 

 

다만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혐오스럽고 싫었던 악역 한 명이 있다. 보통 아무리 악한 캐릭터라도 그 사정을 알게 되면 미워할 수만은 없다. 세상에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고, 다들 자기 행동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비겁한 배신자, 잔인한 살인자조차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끔찍하게 싫어했던 이 악역은 - 차라리 사이코패스였다면 모를까 - 그것도 아닌 주제에 이토록 잔인하고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그 이기심이 더할 나위 없이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비인간적이었달까.  

 

이 악역 이외에는 윤서리, 정여준 등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캐릭터조차도 짠하게 가슴에 남았다. 특히 나정이란 캐릭터는 어찌나 가슴 아프던지. 윤서리가 처음에는 정유준보다도 나정이를 위해서 이 여정을 시작했다는 말이 납득이 되더라. 나도 그랬으니, 나름 동고동락했던 윤서리야 오죽할까.

 

이 소설을 다 읽고, 문목하 작가를 기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다른 작품 또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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